전쟁 아닌 재난 등 비상상황 대비 목적…네덜란드 등도 비슷한 취지
"첫 72시간은 스스로 대처해야"…생수·비상식량·손전등·담요 등 준비 권고
우리 정부도 수년 전부터 비상시 대비 '생존배낭 꾸리기'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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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비상시 국민행동요령 홍보책자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영국이 생존배낭을 챙기라고 했다더니 일본도 그랬대요. 뭔가 일어나려나 봐요."
영국과 일본 정부가 최근 비슷한 시기에 자국민에게 비상용품을 미리 구비해둘 것을 권고했다는 이야기가 온라인에서 확산하며 그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쟁이 발발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을 호소하기도 하고 국내에서도 생존배낭 등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각국 정부의 실제 발표 내용을 들여다보면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해석과는 차이가 있다.
해외 정부 사이트와 국내 정부 관계자들을 통해 각국 정부 발표 내용과 그 배경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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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 공식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영국·일본, '3~7일치 비상식량 준비' 권고는 사실…"재난 대비 취지"
영국과 일본 등 주요 국가가 비상용품 준비를 권고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군사적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차원은 아니라고 각국 정부는 설명한다.
영국 정부는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비 레디'(Be Ready) 캠페인을 발표하고 각 가정에 사흘간 버틸 수 있는 물품을 비축하도록 권고했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생수, 상하지 않는 음식, 손세정제, 화장실용품, 손전등과 여분의 배터리, 담요, FM 라디오, 휴대용 배터리, 현금, 신분증 사본 등 구체적인 물품 목록도 올라와 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이 캠페인의 취지를 두고 극한 기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정부는 홈페이지에서 '작년 겨울의 폭풍과 올여름의 산불 등은 극한 기상 현상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큰 혼란을 초래하고, 전화부터 수도, 인터넷까지 우리가 의존하는 서비스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면서 캠페인의 취지를 '전력이나 물, 인터넷 등의 서비스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악천후 같은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도 비슷하다.
일본에선 호소노 고시 방재상이 방재청 출범을 앞두고 최근 언론을 통해 최소 사흘분, 가급적 1주일 분량의 식품과 생필품을 준비할 것을 주문했는데 이로 인해 일본 내에서도 전쟁 등 발발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퍼졌다.
그러나 이 역시 군사적 위기 상황에 대한 대비가 아니라 방재청 출범을 앞두고 대규모 재난에 대비하도록 촉구하기 위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2일 출범한 방재청은 기존 내각부 방재 담당 부서가 격상된 조직으로, 재난 대응 정책에서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이끄는 사령탑 역할을 한다.
자국에서 논란이 발생하자 호소노 방재상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일각에서 전쟁이나 재난을 예견하는 정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라며 향후 발생이 예상되는 대규모 재난에 대비할 것을 촉구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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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노 고시 일본 방재상[EPA =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 네덜란드·아일랜드도 대비했다는데…"최근 상황 아냐"
온라인에선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 다른 유럽 국가도 자국민에게 비슷한 안내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이들 국가의 안내는 근래 나온 것이 아닌 데다 권고 취지도 영국·일본과 비슷하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해 11월 비상 상황 발생 시 생존 매뉴얼이 담긴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라는 제목의 안내 책자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비상 상황의 예시로 '대규모 정전, 사이버 공격, 폭우로 인한 홍수' 등을 지목하고, 이런 상황에선 물, 전기, 인터넷 등 우리가 익숙한 것들이 갑자기 끊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안내가 '첫 72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일랜드 정부도 8월 말 '비상 상황에 대비하자'(Be Emergency Ready) 캠페인을 시작하고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필수품 목록 등이 담긴 안내 책자를 배포했다.
정부는 이 책자가 '악천후, 정전, 단수 및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기타 비상 상황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조언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둔다'고 밝혔다. 실제로 책자에는 폭풍우, 극한파, 홍수, 폭염, 화재 등 상황별 대응법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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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러-우크라 전쟁 확전 가능성?…외교부 여행경보 조정은 '無'
온라인상에서는 여전히 유럽의 정세 불안을 우려하는 글이 많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합류 추진을 이유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나토 국가를 상대로 도발하면서 전쟁이 확전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게 그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사이트의 여행경보 조정 내역을 보면 유럽이나 일본의 안보 상황이 최근 특별히 악화된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외교부는 해외에서 우리 국민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거주나 체류, 방문에 주의가 요구되는 국가의 위험 수준을 알리는 '여행경보제도'를 운영하는데 올해 들어 유럽이나 일본 여행경보가 상향 조정된 기록은 없다.
경보는 위험 수준에 따라 ▲ 여행유의 ▲ 여행자제 ▲ 출국권고 ▲ 여행금지 등 4단계로 나뉜다.
영국은 '국내 대도시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위험'을 뜻하는 '여행유의' 경보가 발령돼 있으나 이는 과거 테러 등으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외교부 설명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여행유의는 말 그대로 유의하라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자국민에게 생필품 구비를 주문한 네덜란드의 경우 외교부 경보가 내려져 있지 않다. 일본도 마찬가지지만 후쿠시마 원전 반경 30㎞ 이내 등 일부 지역은 '출국 권고' 단계에 해당한다.
나아가 이들 국가에 거주하는 현지 교민에게 신변 안전에 주의를 당부하기 위한 안전 문자를 최근 발송한 일도 없다고 외교부 관계자는 밝혔다.
이 관계자는 "영국, 네덜란드, 일본 등의 국가와 관련해 각국 공관이 안전 위해요소가 있다며 본부에 새롭게 보고하거나, 우리가 별도로 인지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도 "국가 위기 상황에 따라 관심-주의-경계-심각 등의 국가위기경보를 발령하는데 최근 변동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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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해외안전여행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72시간 생존배낭 필요할까…우리 정부도 비상시 대비해 준비 권고
당장 전시와 같은 위험이 임박하지 않았더라도 생필품을 구비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 정부도 '생존배낭 꾸리기'를 권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8월 발표한 '2026 비상시 국민행동요령 홍보책자'를 보면 비상시 안전을 위해 꼭 기억해야 할 4가지 중 하나로 '생존배낭 준비해두기'를 제시했다.
이 또한 최근에 새롭게 포함된 것은 아니다. 2019년 국민행동요령 안내서에서도 식량과 식수, 상비약품, 라디오, 손전등. 침구 등 비상시를 대비한 물품을 준비하도록 안내했다.
올해 안내문에선 생존배낭에 챙겨야 할 것으로 2~3일분의 생수와 간편식, 상비약(만성질환약), 손전등·라디오와 건전지, 화장지, 위생용품, 담요, 휴대전화 충전기, 보조배터리, 비옷, 방독면, 마스크, 고무장갑, 고무장화, 김장봉투, 투명·알루미늄테이프 등을 제시했다.
주요 국가들이 공통으로 최소 3일치를 준비하도록 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덜란드 정부는 홈페이지에서 "비상상황 발생 후 처음 72시간은 정부와 응급구조대가 가장 필요한 곳에 집중하기 때문"이라며 "결과적으로 대부분 사람은 첫 72시간은 스스로 대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영국 정부도 "3일치를 준비해두면 도움이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이 가는 동안 버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안내했다.
생존배낭을 준비하지 못한 채 재난 재해를 맞았다면 어떻게 될까.
행안부 재난구호과 관계자는 "비상식량 등을 준비해두면 도움이 되겠지만, 정부도 지역별 재난 재해 발생 특성에 맞춰 필요한 물건의 비축량을 정해 보유하고 있다"면서 "경북 산불 발생 때도 대피한 주민들에게 지자체가 거처와 구호물품 등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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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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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Yonhap Korean · 권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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