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현

카뮈 동명 소설, 연극으로 각색…단출한 무대 위로 옮긴 1인극

이동휘의 '완급 조절' 연기 인상적…12월 6일까지 대학로 TOM 2관

이미지 확대 연극 '전락'에서 열연하는 이동휘

연극 '전락'에서 열연하는 이동휘

[프로젝트그룹일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알베르 카뮈가 1956년 발표한 마지막 장편소설 '전락'(La Chute)은 인간의 선의(善義)가 위선을 변질하는 역설을 집요하게 파고든 작품이다.

주인공 장 바티스트 클라망스는 파리에서 성공한 변호사로 살아가며, 남을 돕는 삶에 만족해한다. 그러다 어느 날 밤 다리 위에서 벌어진 한 여인의 투신 사건을 목격하고도 외면한 사실이 그의 내면에 균열을 만든다. 이후 그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웃음소리에 시달리며, 자신이 행해온 '선행'이 단순한 도덕심이라기보다 타인 위에 군림하고 찬사를 받으려는 위선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카뮈는 이 고백을 단순한 '죄책감의 서사'로 끝내지 않는다. 클라망스의 참회는 자신에 대한 속죄가 아니라, 역으로 타인을 '고해의 법정'에 세우는 수단이 된다. 그는 남을 심판하기 위해 먼저 자신의 허물을 폭로한다. '내가 이미 나를 고발했으니 너는 나를 정죄할 수 없다'는 식의 논리로 타인의 판단 가능성을 무력화하며, 참회하는 순간조차 지배권을 놓지 않는다. 그래서 작품을 읽는 동안 독자는 내내 불편한 위치에 놓인다. 클라망스가 말하는 고백은 듣는 이에게 위로가 아니라, 결국 자기 안의 과잉된 자의식을 들춰내는 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전락'이 25일 서울 대학로 TOM 2관에서 개막했다. 작품은 원작 소설의 복잡하고 긴 사유의 흐름을 무대의 단일한 사건으로 수렴시키는 데 주목한다. 손상규 연출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바 '멕시코 시티'에서 낯선 이와 마주 앉은 클라망스가 관객을 청자로 삼아 자신의 삶을 털어놓는 1인극 구조로 소설을 각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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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전락'에서 열연하는 이동휘

[프로젝트그룹일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극은 원작의 '긴 이야기'와 '복잡한 시간'을 덜어내면서도, 주인공의 기억이 파편처럼 튀는 서사의 리듬은 놓지 않았다.

무대는 단출하다. 계단이 딸린 발판과 일렬로 연결된 의자, 벽에 걸린 옷 같은 최소한의 장치가 전부다. 관객은 '바에서 우연히 만난 손님'이 돼 클라망스의 고백을 듣는 동시에, 어느 지점부터는 자신도 피고석에 앉은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원작의 심오한 내용을 한 인물의 대사로만 표현해야 하므로 배우에게 높은 수준의 연기 역량이 요구되는 작품이다.

29일 무대에 오른 배우 이동휘는 90분을 홀로 끌고 가는 1인극의 부담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1인극은 기본적으로 배우의 호흡과 리듬, 관객과의 시선 교환이 무너지면 순식간에 공연장의 공기가 달라진다. 이동휘는 극 초반부터 능청스러운 입담으로 관객의 귀를 붙잡으며 그런 부담감을 완벽하게 이겨냈다.

무엇보다 이동휘의 강점은 감정의 전환을 매끄럽게 이어가면서도, 전환 그 자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데 있다. 작품에서 클라망스는 자신의 상처를 끌어안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타인의 위선을 끄집어내는 이중적인 인물이다. 이동휘는 이 양면성을 단순히 대사의 톤으로만 처리하지 않는다. 관객은 시시각각 변하는 이동휘의 표정과 시선의 각도, 호흡의 폭을 통해 웃음 뒤에 숨은 클라망스의 냉소와 잔인함을 함께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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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클라망스가 과거를 고백하는 대목에서 이동휘는 압도적인 흡입력을 보여준다. 조명이 주황빛으로 바뀌고 무대 양옆 벽에 배우의 그림자가 또렷해지는 순간 이동휘의 표정이 소름 끼치도록 차갑게 변한다. 대사를 끝낸 뒤 바닥을 찍는 듯한 발소리와 제스처는 관객의 몸까지 뒤흔들 정도로 강렬했다.

1인극에서 흔히 생길 수 있는 단조로움을 극복하는 이동휘의 완급 조절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특정 대목에서 대사의 속도를 낮추고, 또 다른 대목에서는 문장과 문장 사이를 크게 띄우며 관객이 자신의 호흡을 따라오도록 연기했다. 이동휘의 호흡에 자신의 호흡을 맞춘 관객은 어느 순간부터 대사를 단순히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기 안에 감췄던 참회의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공연은 12월 6일까지 서울 대학로 TOM 2관에서 펼쳐진다. 이동휘와 함께 대학로 대세 배우 윤나무가 클라망스 역으로 번갈아 출연한다.

hyu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10월30일 10시10분 송고

Source: Yonhap Korean · 임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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