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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근 제작 AI 이미지]
술 이름에는 대개 재료나 빚는 계절, 술빛과 향이 담겼다. 이화주(梨花酒)는 배꽃이 필 무렵 빚는다고 해서, 황금주(黃金酒)는 술빛이 황금처럼 노랗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름만 들어도 술의 모습이 그려졌다.
유하주(流霞酒)는 사정이 달랐다. 흐를 유(流)에 노을 하(霞), 술 주(酒)를 썼다. 글자대로 풀면 '흐르는 노을의 술'이다. 이름의 뿌리는 2천년 전 중국의 신선 이야기에 닿아 있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유하주를 본래 신선들이 마시던 술로 소개했다. 출처는 후한의 사상가 왕충(王充)이 쓴 '논형'(論衡) 도허(道虛)편이다. 하동 포판 사람 항만도(項曼都)는 신선술을 배우겠다며 집을 떠났다가 3년 만에 돌아와 자신이 신선들과 하늘에 올라갔다고 말했다. 달 가까운 곳은 몹시 추웠고, 배가 고플 때 신선이 유하 한 잔을 건넸는데 이를 마시면 몇 달 동안 배가 고프지 않았다고 했다.
정작 왕충은 이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논형'은 당시 떠돌던 허황한 주장을 따져 반박한 책이었다. 그는 하늘에 올랐다면 왜 신선이 되지 못했는지, 왜 3년 뒤 돌아왔는지 되물었다. 결국 도를 구하러 먼 곳을 떠돌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사람이 부끄러운 마음에 지어낸 이야기라고 봤다.
신선 이야기를 비판하기 위해 소개된 일화였지만 '유하'라는 이름은 살아남았다. 중국 문인들은 이후 좋은 술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유하를 즐겨 썼고 '신선의 술'이라는 이미지도 함께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이름은 일찍 등장했다. 신라부터 조선 초까지의 시문을 모아 1478년 펴낸 '동문선'에도 유하주가 나왔고, 고려 궁중 연회의 노랫말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고려 때 송나라에서 들어온 궁중 악무인 당악정재 가운데 '수연장'(壽延長)이 있었다. 정월 대보름에 임금에게 술을 올리고 장수를 기원하던 춤이었다. '고려사' 악지에 전하는 노랫말에는 '범금준 유하염일'(泛金尊 流霞豔溢)이라는 구절이 나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를 '금잔에 부은 유하주 넘쳐흐른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봄날 옥 궁전에 상서로운 기운이 흐르고, 금잔에는 신선의 술이 넘실거리는 장면이었다. 수연장은 조선에서도 이어져 1493년 편찬된 '악학궤범'에 실렸고, 조선 후기 왕실 잔치를 기록한 여러 의궤에도 자주 등장했다.
다만 이 노랫말만으로 고려 궁중에서 후대 조리서에 적힌 것과 같은 방식의 유하주를 실제로 빚어 마셨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당악정재의 노랫말은 중국 송나라 사(詞) 문학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유하' 역시 중국 시문에서 굳어진 표현을 빌려왔을 가능성이 있었다. 노래 속 술 이름과 실제 술 제조법은 나눠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유하주 빚는 법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조선시대 조리서에서였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은 '산가요록',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임원십육지'에서 유하주 제조법을 찾아 비교했다. 같은 이름을 사용했지만, 문헌마다 빚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가장 앞선 기록은 1450년께 조선 초 어의 전순의가 쓴 '산가요록'이었다. 멥쌀 2말5되를 하룻밤 불려 곱게 가루를 낸 뒤 끓는 물로 반쯤 익은 죽을 만들고, 식으면 누룩과 밀가루를 넣어 밑술을 안쳤다. 계절에 따라 며칠을 기다렸다가 쌀을 쪄 덧술하고, 다시 21일가량 익혀 술을 썼다.
1540년께 경북 안동의 김유가 쓴 '수운잡방'의 유하주도 큰 틀은 비슷했다. 백미 2말5되를 불리고 가루 낸 뒤 끓는 물을 부어 반쯤 익은 죽을 만들었다. 누룩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밑술을 만들고, 7일 뒤 백미 5말을 쪄 다시 덧술했다. 이후 14일가량 익혔다.
한 번 술을 빚는 데 들어간 쌀만 7말5되였다. 밑술을 만든 뒤 일주일을 기다리고, 다시 두 배 분량의 쌀로 덧술하는 이양주(二釀酒)였다. 술 한 독을 완성하기까지 3주 넘는 시간과 적지 않은 곡식이 필요했다.
국립농업과학원은 '산가요록'과 '수운잡방', '음식디미방'의 유하주가 쌀로 죽을 만들 때 완전히 익히지 않았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녹말이 천천히 분해되도록 해 발효 기간을 늘리려 했던 것으로 분석했다.
17세기 장계향이 한글로 쓴 '음식디미방'에도 유하주가 실렸다. 반면 19세기 서유구의 '임원십육지'에 적힌 유하주는 앞선 기록과 상당히 달랐다.
'임원십육지'에서는 술보다 누룩 준비가 먼저였다. 정월이나 2월에 흰쌀을 가루 내 오리알만 한 덩이를 빚고, 볏짚이나 솔잎 사이에 넣어 일주일가량 띄운 뒤 햇볕에 말려 쌀누룩을 만들었다. 3월 초에는 다시 흰쌀로 구멍떡을 만들어 익힌 뒤 이 쌀누룩을 넣어 술을 빚었고, 단오 무렵부터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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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근 제작 AI 이미지]
이 제조법은 배꽃 필 무렵 빚는 이화주와 상당히 닮았다. 이화주 역시 쌀가루로 누룩을 만들고, 쌀가루로 만든 구멍떡과 버무려 술을 빚었다.
국립농업과학원은 네 문헌에 기록된 유하주를 실제로 빚어 비교했다. 알코올 도수는 '산가요록' 유하주가 15.2%, '수운잡방'이 18.0%, '음식디미방'이 14.9%였다. 같은 계열의 제조법이었지만 세부 과정에 따라 결과에는 차이가 나타났다.
'임원십육지' 유하주는 더 달랐다. 알코올 도수는 4.5%였고 당도는 25.5브릭스로 높았다. 연구진은 제조법과 맛이 이화주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분석하고, '이화주'와 '유하주'의 발음이 비슷해 문헌을 옮기는 과정에서 이름이 잘못 전해졌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확정된 결론은 아니었다. '임원경제지'는 여러 앞선 문헌을 인용해 엮은 책이고 해당 유하주 항목도 '삼산방'이라는 책을 출처로 밝히고 있었다. 옛 술의 이름과 제조법이 기록과 필사를 거치며 서로 뒤섞였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유하주는 고문헌 속 이름으로만 남지도 않았다. 국순당은 2013년 '산가요록' 제조법을 토대로 유하주를 복원했다. 2008년 시작한 '우리술 복원사업'의 21번째 술이었다.
강원 춘천의 호수양조에서는 지금도 '유하'라는 이름을 붙인 유하약주와 유하탁주를 만들고 있다. 춘천에서 난 쌀과 물을 이용해 술을 빚으며, 유하약주는 고문헌 제조법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유하탁주는 고문헌의 방식이 탁주와 잘 맞지 않아 '유하'라는 이름을 가져와 새롭게 빚었다고 양조장 측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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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 홈페이지 캡처]
한 양조장에서 나온 두 술 가운데 하나는 옛 제조법을, 다른 하나는 옛 이름을 이어받은 셈이었다.
달 곁에서 신선이 건넸다는 한 잔은 왕충의 붓끝에서 허황한 이야기로 판정받았다. 그러나 '유하'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고려 궁중의 노랫말로 흘러들었고, 조선의 여러 조리서에서는 서로 다른 제조법을 얻었다. 수백 년 뒤 연구자들은 그 기록을 따라 술을 다시 빚었고, 오늘날 양조장에서는 또 다른 모습으로 술병에 이름을 새겼다.
한 잔을 마시면 몇 달 동안 배고픔을 잊었다는 신선의 술은 전설 속에 머물렀다. 대신 '유하'라는 두 글자가 품은 상상력은 2천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 지금도 한 잔의 우리 술 속에 남아 있다.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전시기획자 ▲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11월03일 15시44분 송고
Source: Yonhap Korean · 이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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