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으로 버티는 민간센터 '띵동'…성소수자 상담건수, 정부센터 240곳과 맞먹어
쉼터 매뉴얼 '입소 거부 금지' 무색…트랜스젠더 청소년에 "수술했나"
실태 파악 못 하는 정부…전문가 "정책 집단으로 인정하고 공식 대책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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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의 청소년 성소수자 프로그램 '띵동식당'에서 쓰인 활동지 [띵동 블로그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보배 기자 서효주 인턴기자 = 한밤중 서울의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에 다급한 요청이 들어 왔다. 지방에 사는 한 청소년 성소수자가 그날 밤 잠잘 곳조차 없는 위기에 놓였다는 연락이었다.
당장 현장으로 달려갈 수 없었던 띵동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택시를 타고 오라고 하자. 우리가 택시비를 내자"는 얘기까지 오갔다.
다행히 인근 지역에 있는 청소년쉼터 소장이 여러 곳에 연락을 돌려준 덕에 이 청소년은 한 자립지원관에서 위기의 '하룻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기댈 곳을 찾지 못한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문을 두드리는 곳은 정부가 아니라 띵동처럼 문턱이 낮은 민간 지원단체다.
◇ 전국 240곳 합쳐도 '띵동' 한 곳 수준…"이해해 줄 상담사 만날 확률 높아"
공공 상담 인프라는 있지만, 정작 청소년 성소수자에게는 잘 닿지 않는다.
성평등가족부가 진보당 손솔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전국 청소년상담복지센터 240곳의 청소년 성소수자 상담은 479건에 그쳤다.
'성 상담' 영역 중 '성 정체' 부문만 집계한 수치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같은 기간 띵동 한 곳의 상담 건수(474건)와 비슷한 수준이다.
2014년 설립 이래 정부 지원 없이 전액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띵동의 상담 건수는 지난해 599건으로 전년 대비 11.5% 늘었다. 이사장을 포함한 9명이 상담을 모두 맡는다.
정민석 띵동 이사장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상담 건수가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다. 매년 갱신된다"며 "인원은 제한적이고, (청소년들의) 위기도가 굉장히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공공 영역이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민간이 떠맡는 기형적 구조가 심화하고 있는 셈이다.
파파고는 공공기관이나 일반 상담센터 대신 띵동을 찾는 이유로 '확률'을 꼽았다. 파파고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도 "운 좋게 좋은 분을 만나서 대화를 편하게 나눌 수 있었다"면서도 "띵동에 가면 내 이야기를 깊게 들어주고 그나마 용어라도 알고 조금 더 이해해줄 만한 분을 만날 확률이 훨씬 높다"고 했다.
좋은 상담사를 만나는 일이 '운'이 되는 건, 상담사마다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상담 인력 역량 강화 교육에 성소수자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경력 10년이 넘게 공공 상담기관 등에서 일해 온 베테랑 상담사 김미경(가명) 씨의 진단은 달랐다. 김씨는 해당 교육이 "기본 교육에 가까워서 그것만으로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다 커버할 수 없다"며 "결국 개인의 역량으로 채워서 충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보니 상담사들의 실력 편차도 엄청나게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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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석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이사장이 지난달 26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촬영 서효주 인턴기자]
◇ "매뉴얼만 아름다우면 무슨 소용"…트랜스젠더 청소년엔 쉼터마저 '벽'
상담 공백은 민간이 메운다고 하더라도, 청소년들이 머물 곳을 찾아주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트랜스젠더 청소년은 쉼터와 자립지원관을 이용하려고 해도 성별로 나뉜 시설이라는 벽을 맞닥뜨리게 된다. 청소년복지 지원법 시행령상 시설에 남·여용 화장실 등을 구분 설치하라고 규정돼 있는 탓이다.
정 이사장은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입소를 문의하면 "수술은 했나요"라는 질문부터 돌아온다고 전했다.
트랜스젠더 여성 서영은 선생님들의 배려로 쉼터에서 1인실을 쓰고 모두가 잠든 뒤 샤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설 자체의 분위기에서 위압감이 있었다"고 했다.
정부 매뉴얼에도 원칙은 있다. 성평등가족부가 쉼터 종사자용으로 배포한 '청소년인권보호 매뉴얼'은 '정체성을 이유로 입소를 거부하거나 생활 과정에서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시행령에는 이렇게 꽁꽁 묶어 놓고 매뉴얼만 아름다우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성평등가족부는 "다양한 성적지향·성별 정체성과 관련한 별도의 전용공간이나 지침은 없으나, 입소 문의 시 개별 상담에서 청소년의 의사와 안전을 우선 고려해 생활공간과 지원방식을 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매뉴얼의 원칙이 현장에서 지켜지는지 점검하느냐는 질의에는 "일반 청소년과 동일한 조건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며 별도의 모니터링 체계는 없다"고 인정했다. 최근 3년간 청소년 성소수자의 차별 관련 민원 기록에 대해서는 "찾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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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이 주원(24·활동명)이 무지개교실에서 검정고시 특강을 하고 있다. [무지개교실 제공]
◇ 청년 봉사자들이 세운 배움터…"저희 보며 희망 얻길"
학교를 떠나야 했던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배움터이자 공동체인 '무지개교실'도 자원봉사자들의 손으로 꾸려지고 있다.
시민단체 '노동·정치·사람' 청년 회원들은 2023년 '자퇴한 청소년 성소수자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환대받는 학교가 있다면 어떨까'라는 문제의식으로 무지개교실을 시작했다.
교사 역할을 하는 '탱이'(활동가 애칭) 13명은 모두 자원활동가이고, 운영비는 굿즈 판매 수익금과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청소년 성소수자 70명가량이 참여하고 있고, 이 중 10여명은 오프라인 수업에도 출석하고 있다.
탱이들은 검정고시 특강으로 학교생활을 경험할 수 있게 돕고, 명절 모임과 일상 소통방을 통해 청소년들이 우울감에 빠지지 않도록 정서적 지원을 한다.
다만 활동가 대부분이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으로 비전문가인 만큼 한계도 있다.
탱이로 활동 중인 주원(24·활동명)은 "저희도 배운 게 많지 않다 보니 복잡한 상황에 있는 청소년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며 "전문인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도 "청소년들이 '스무 살이 넘으면 내가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저희를 보면 '20대가 돼도 저렇게 살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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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토론회'에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산발적 지원'뿐…"성소수자를 정책 집단으로 인정해야"
제도를 개선하려면 실태부터 알아야 하지만, 국가 차원의 데이터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성평등가족부가 손솔 의원실에 낸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조사·연구 현황으로 제시한 실적은 전체 아동·청소년 대상 인권실태 연구의 문항 2개뿐이었다.
인권위 실태조사 책임연구원인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청소년 성소수자에 초점을 맞춘 전면적인 조사가 있어야 문제가 무엇인지 정부에서 파악할 수 있다"며 "구조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다 보니 산발적인 지원만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청소년들이 '운이 좋았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런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성소수자를 정책 집단으로 인정하고 공식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의원도 "무엇보다 성소수자 청소년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며 "자신의 정체성을 이유로 국가의 보호망밖에 놓이는 청소년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bobae@yna.co.kr
seohyo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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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Yonhap Korean · 이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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