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메밀 생산량 83% 차지하는 제주…자청비 신화·봄가을 메밀꽃 관광명소
빙떡·수제비에서 즉석죽·가래떡·전통주로…건강 기능성 연구도 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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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연합뉴스) 지난 12일 제주시 조천읍 와흘메밀농촌체험휴양마을을 찾은 이들이 활짝 핀 메밀꽃밭을 산책하고 있다. 와흘메밀마을은 내달 8일까지 자청비 와흘메밀문화제를 이곳에서 진행한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하늘에서 뒤늦게 가져온 메밀 씨앗이 척박한 제주 땅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 세월 제주 사람들의 삶과 함께해 왔다.
제주 농경의 여신 자청비가 전해줬다는 메밀은 굶주림을 달래주던 구황작물에서 제주를 대표하는 향토음식의 재료로, 이제는 간편식과 전통주로까지 변신하고 있다.
봄과 가을이면 새하얀 꽃으로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하고, 최근에는 건강 기능성 연구와 다양한 식품 개발까지 이어지면서 그 쓰임새를 넓혀가고 있다.
◇ 자청비가 뒤늦게 가져온 씨앗…제주인의 삶에 뿌리내리다
메밀 하면 많은 사람이 강원도 봉평을 먼저 떠올린다.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 덕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대 메밀 생산지는 제주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4년 제주 메밀 재배면적은 3천236㏊로 전국 3천721㏊의 87%를 차지했다. 생산량도 2천586t으로 전국 3천114t의 83%에 달한다.
제주에는 메밀에 얽힌 오래되고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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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연합뉴스) 지난 2014 탐라국 입춘굿 개막을 알리는 전야제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주 농경의 여신 자청비 이야기다.
제주 무속신화 '세경본풀이'에 따르면 자청비는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사랑하는 남편을 살리고 하늘나라의 반란을 평정하는 큰 공을 세운다.
이에 옥황이 하늘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하지만, 자청비는 이를 마다하고 대신 인간 세상에 심을 곡식의 씨앗을 달라고 청한다.
그렇게 하늘에서 여러 곡식의 씨앗을 얻어 땅으로 내려온 자청비.
그런데 '아뿔싸!' 정작 중요한 씨앗 하나를 깜빡 잊고 온 것이다.
바로 메밀이었다.
자청비는 부랴부랴 하늘로 다시 올라가 메밀 씨앗을 가져왔다.
이 때문에 제주에서는 메밀을 다른 곡식보다 늦게 심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렇게 뒤늦게 전해진 메밀은 제주 사람들에게 더없이 고마운 곡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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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화산섬 특유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생육 기간이 짧아 흉년이 들었을 때 부족한 식량을 대신하는 구황작물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제주 사람들은 메밀로 밥과 죽, 범벅, 수제비, 묵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특히 얇게 부친 메밀전에 무채를 넣어 돌돌 말아 먹는 빙떡은 명절과 제사, 혼례와 상례 등 집안 대소사에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향토음식이다.
메밀은 이제 관광객의 눈과 입까지 즐겁게 한다.
봄과 가을 두 차례 심고 수확할 수 있는 메밀은 한 해에 두 번이나 새하얀 꽃밭을 펼쳐 보인다.
한라산과 오름을 배경으로 소금을 뿌려놓은 듯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은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제주도는 올해 메밀 요리경연과 미식회, 메밀 베개 만들기, 메밀꽃밭 사진 촬영 등 다양한 관광·체험 프로그램 개발에도 나섰다.
꽃이 피면 아름다운 풍경이 되고, 열매를 맺으면 맛있는 음식이 되는 메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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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연합뉴스) 지난달21일 제주시 오라동 중산간 밭에 메밀꽃이 활짝 피어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빙떡·수제비 넘어 즉석죽·전통주까지…메밀의 새로운 도전
제주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메밀이 이제는 현대인의 입맛과 생활방식에 맞춘 새로운 먹거리로 변신하고 있다.
제주도 농업기술원은 최근 메밀을 활용한 즉석죽과 가래떡 등 건강 간편식 시제품 2종을 개발했다.
메밀 즉석죽은 막대 모양의 포장에 담긴 가루에 뜨거운 물만 부으면 부드러운 죽이 완성되는 제품이다.
메밀 가래떡은 한입 크기의 냉동제품으로, 자연해동하거나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다.
이들 제품에는 농업기술원이 지난해 자체 개발한 '찐 메밀가루'가 사용됐다.
일반 메밀가루는 반죽이 잘 뭉치지 않고 가공한 뒤 쉽게 굳는 단점이 있지만, 찐 메밀가루는 물에 잘 풀리고 점성이 높다.
메밀 특유의 쓴맛 성분은 줄고 항산화 성분인 루틴 함량은 늘었다.
메밀의 변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술'이다.
농업기술원은 제주산 메밀을 활용해 알코올 함량 12%의 탁주와 약 14%의 약주를 만드는 기술도 개발했다.
국산 효모로 만든 메밀 탁주는 연한 분홍빛을 띠며 신맛과 단맛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시음 평가에서는 회와 수육 등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는 의견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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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메밀 약주는 숙성기간이 길어질수록 과일향을 내는 성분이 증가했으며, 5개월 숙성한 약주가 최종 기호도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농업기술원은 오는 11월 특허를 출원하고 도내 양조업체에 기술을 이전해 제주산 메밀 전통주의 상품화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2028년까지 제주 향토음식과 메밀을 접목한 다양한 조리법과 간편식 개발도 추진한다.
메밀의 새로운 가능성은 맛과 편리함에만 있지 않다.
제주도 농업기술원과 제주대학교는 지난해 12월 제주 메밀의 체중 증가 억제와 항산화·항염 효과를 확인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제주 메밀 추출물을 활용한 세포 실험에서 지방세포 내 지방 축적이 감소했다.
또 고지방 먹이를 먹인 실험 쥐에 메밀 추출물을 12주간 투여한 결과, 투여하지 않은 쥐보다 체중 증가가 약 10∼25% 억제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국내 육성 쓴메밀 품종인 '황금미소'는 일반 단메밀 품종인 '양절'보다 항산화 활성이 약 2.5배 높았다.
농업기술원은 이러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메밀의 기능성 성분을 활용한 다양한 식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하늘에서 깜빡 잊고 뒤늦게 가져온 씨앗 하나가 제주 사람들의 밥상을 채우고, 봄과 가을 들녘을 수놓더니 이제는 술잔에 오를 채비를 하고 있다.
제주 메밀의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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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연합뉴스) 지난 5월 23일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보롬왓에서 제1회 'Tasty Jeju 메밀' 요리경연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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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Yonhap Korean · 변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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