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규

연예인 a, b, c가 모였다. 셋은 공연을 준비 중이다. 멋진 무대를 꿈꾸는 연출자의 의지가 활화산이다. 화끈하게 분위기를 달궈 줄 가수부터 챙겨야지 싶었다. "누가 가수냐?" 묻는다. a가 답한다. "내가 가수다." a는 "나다"라고만 말해도 충분했다. 질문자가 주어(누구)를 들어 가수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a는 다만 명쾌하게 하고 싶었다. 주어를 갖춰 다른 사람 아닌 자기가 가수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나'라는 주어와 '가수(이)다'라는 서술어의 호응이 달리 읽힐 여지를 막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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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에 대한 사전의 정의

표준국어대사전 캡처

상대의 발화 내용에 따라 그와 상대하는 사람의 발화 내용 또한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 다음번 연습 모임에서 연출자는 말을 바꾼다. "각자 자신을 소개해라!" 공연을 준비하는 다른 실무 인력들도 a, b, c를 다 알아둬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셋은 차례로 답한다. "나는 가수다." "나는 탤런트다." "나는 개그맨이다." "내가 가수다"와 비교되는 "나는 가수다"는 뭔가. '나'는 주제어다. 'b, c가 아니라 a인 <나>로 말할 것 같으면'이라고 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여기선 '주어'이기도 하다. '은/는'이 받치는 '나'를 주제로 삼으니 다음에 오는 '가수다' 역시 '서술어'이지만 '설명어'로도 해설된다. '주어-서술어'에 대응하는 '주제어-설명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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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어'에 대한 사전의 정의

표준국어대사전 캡처

주어가 문법 얼개로 따지는 개념이라면 주제어는 담화 맥락으로 살피는 개념이다. 주제어는 옛 정보, 주어진 정보, 한정적 정보 등의 의미적 특성을 나타낸다는 게 문법서의 설명이다. "나는 가수다"가 보여주는 바다. 주어진 정보인 '나'는 상대적으로 옛 정보이고 한정적 정보이지만, 설명 영역에 있는 '가수'는 새로운 정보다.

중요한 것은 주어만 주제어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정책을 결정한다"에서 '정책'을 주제로 삼으려면 "정책은 내가 결정한다"라고 쓴다. 엎치나 메치나 주어는 '나'이지만, 주제어는 주어 '나'에서 목적어 '정책'으로 바뀌었다. 부사어라고 왜 주제어가 못 되나. "사람들이 이번 공연에 많이 와야 할 텐데"는 "이번 공연에는 사람들이 많이 와야 할 텐데"가 될 수 있다. '주어'만 '주연'이라는 건 착각이다. 주제를 잘 파악하려면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유현경 한재영 김홍범 이정택 김성규 강현화 구본관 이병규 황화상 이진호, 『한국어 표준 문법』, 집문당, 2019

2. 국립국어원,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문법1(체계 편)』, 2011

3. [이런말저런글] '이'냐 '은'이냐… 둘은 꽤 다르다 (송고 2026-07-01 05:55) - 2026년07월01일 05시55분- https://www.yna.co.kr/view/AKR20260630093000546

4. 표준국어대사전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11월04일 05시55분 송고

Source: Yonhap Korean · 고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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