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현

내달 21일까지 명동예술극장…'안트로폴리스 5부작' 중 네번째 작품

아들과 결혼한 비극의 왕비 되살려…현대적 연출로 폭력과 전쟁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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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이오카스테'

[국립극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지금, 삶은 너희 앞에 선택권을 주고 있다. 너희들은 자유롭다. 너희들은 결정할 수 있는데, 서로 죽이는 것 말고 달리 결정할 수 없다는 거니?"

왕권 다툼으로 전쟁을 벌이려 하는 두 아들을 보며 어미가 절규했다. 그러나 전쟁의 문턱에서 고향과 가족의 파멸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도 각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아들들은 파국으로 달려갈 뿐이었다.

지난 28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한 국립극단의 연극 '이오카스테'는 대화와 공존을 거부하고 스스로 폭력과 전쟁이라는 비극으로 걸어 들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이오카스테'는 국립극단이 지난해부터 무대에 올리고 있는 독일 극작가 쉼멜페니히의 '안트로폴리스 5부작' 프로젝트 중 네 번째 작품이다.

전편에서 신화 속 인물이자 테베의 왕인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눈을 멀게 한 이후 그와 왕비 이오카스테의 아들 '에테오클레스'·'폴리네이케스'가 왕권을 두고 다투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장녀들' 등을 연출한 서지혜가 윤색을 맡았다.

널리 알려진 신화에서 이오카스테는 남편인 오이디푸스가 사실은 오래 전 자신이 버린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살한다. 그러나 작품은 이오카스테가 살아 있다고 가정하고, 끔찍한 운명의 무게와 고통을 짊어진 채 전쟁이라는 후대의 비극을 막아내려 고군분투하는 인물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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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이오카스테'

[국립극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극에서는 내내 '운명'과 '선택'이 대비된다.

오이디푸스를 낳고 그와 결혼할 운명이었던 이오카스테는 아이를 내다 버리는 등 이를 피하고자 했지만 신들이 정한 운명을 거스르지 못했다. 이 작품에서 이오카스테는 "목을 매려고 시도했으나 밧줄이 비웃듯이 목을 조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작가가 이오카스테에게 죽음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그에게 새로운 임무이자 형벌을 내리기 위해서다. 비로소 잔인한 신탁이 모두 실행되는 순간에 사랑하는 자식이자 피를 나눈 형제들이 서로와 테베 전체를 파괴하려 하는 것을 막는 것이 그의 임무이며, 이 임무가 허무하게도 실패하는 것을 바라봐야만 하는 것이 그에게 내려진 형벌이다.

극 후반부에 이오카스테의 중재로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협상장에 서지만 협상은 곧 결렬된다. 테베의 성문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피난민이 속출하는 가운데 형제 또한 서로를 총으로 쏴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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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이오카스테'

[국립극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러한 광경은 낯설지 않다. 대화와 공존이라는 선택지를 스스로 거부하고 비극을 선택하는 결말은 인류 역사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현대적인 연출로 이러한 비극을 오늘날의 현실로 불러냈다.

고대 도시 테베의 성문 앞을 구현한 무대에는 철제 구조물과 컨테이너, 낡은 자동차, 첨탑이 등장하며 배우들의 대사와 효과음을 통해 비행기와 미사일이 묘사된다. 현대 전투복을 입고 총을 든 군인과 종군기자들은 현대의 분쟁 지역을 연상시킨다.

극 중간에 이오카스테 일가의 연기를 잠시 멈추고, 시간대를 이동시켜 2천500년 후의 테베 관광객이 등장하도록 만드는 연출은 이러한 주제 의식을 드러낸다. 단체 여행객에게 가이드는 "여기 보시면 한 여자(이오카스테)와 두 남자(아들들)의 입상이 파괴돼 있다"며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이들은 각자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전쟁을 실행했겠죠. 그러나 전쟁과 정의가 어깨를 맞댈 수 있을까요? 인간은 전쟁을 하고, 전쟁이 인간을 파멸로 이끕니다."

따라서 이오카스테의 설득과 중재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건네는 경고의 메시지다. 죽지 못하고 눈을 부릅떠 파괴의 참상을 목격해야 하는 이오카스테의 운명은 우리에게 내려진 형벌이기도 하다. 작품은 아들들의 시신 사이에서 비극을 한탄하며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기다려라'라는 말을 읊조리는 이오카스테의 모습을 비추며 끝이 난다.

공연은 다음 달 21일까지 이어진다.

fat@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10월29일 12시17분 송고

Source: Yonhap Korean · 권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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