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한복으로 세계에 알린 우리 옷…전통에 실용성 더한 기술 특허도
강원 1호 한복 명장 "강릉을 한복 도시로…다음 세대 위한 기반 조성 필요"
[※ 편집자 주 = K-컬처가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시대, 우리 전통의 맥을 묵묵히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행보다 자신만의 개성과 가치를 추구하는 '힙스터'처럼 한길을 걸으며 한국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지켜온 이들입니다. 연합뉴스는 명인·명장부터 새로운 감각의 젊은 전승자까지 전국 각지에서 전통과 지역의 가치를 재창조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삶을 매주 한 차례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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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양지웅]
(강릉=연합뉴스) 강태현 기자 = "옷감의 올을 반듯하게 잡지 않으면 아무리 정성껏 바느질해도 완성된 옷이 뒤틀려요. 사람도 마찬가지죠. 올바르게 살아가지 않으면 아무리 겉을 꾸며도 소용없어요. 이런 삶의 혜안을 한복을 만들며 배웠어요."
30여년 넘게 바늘과 실로 우리 옷의 아름다움을 빚어온 강영숙(65) 한복 명장에게 바느질은 단순히 옷을 만드는 기술이 아닌 삶을 대하는 태도다.
2019년 강원지역 1호 한복 명장으로 선정된 강씨는 옷감의 올을 바르게 세우는 것처럼 삶도 올곧게 살아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며 한복 외길을 걸어왔다.
어머니의 재봉틀을 놀잇감 삼아 자란 어린 소녀가 한복집 주인을 거쳐 전통 복식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는 명장이 되기까지 그의 삶에는 언제나 한복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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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양지웅]
"예전에는 집에서 한복을 지어서 입었어요. 놀거리가 별로 없으니 어머니가 한복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재봉틀을 가지고 놀면서 자랐죠. 한복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막상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가장 먼저 한복이 떠오르더라고요."
결혼 이후 강원도로 터전을 옮긴 강씨는 1989년 강원도여성회관에서 한복 과정을 이수하고 이듬해 7월 한복집을 열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같은 해 '강원여성생활작품전'에 출품한 한복이 대상인 강원도지사상을 받으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5년 뒤 '제3회 한국전통의상 공모대제전'에서는 모시 조각으로 십장생무늬를 표현한 작품으로 문화체육부 장관상인 대상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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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때만 하더라도 집안에 결혼식 등 행사가 있으면 가족 모두가 함께 한복을 맞춰 입는 문화가 있었다.
이에 많게는 10여명의 옷을 한꺼번에 만들기 위해 밤새워 바느질하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들어 한복 대여점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맞춤 한복 수요가 줄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한복 대여업으로 전환하라고 권했지만, 강씨는 맞춤 제작을 고집했다.
그 영향으로 대여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리는 부침을 겪었지만, 그 시간은 되레 한복의 본질과 기술을 깊이 탐구하는 계기가 됐다.
강씨는 천연 염색을 배우고 전통 복식 유물을 공부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한복의 세계가 얼마나 좁았는지 깨달았다.
그렇게 쌓아온 내공은 전통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인이 한복을 더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바꾸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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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양지웅]
강씨가 가장 자신 있게 만드는 옷은 조선 후기 사대부 등이 입던 겉옷인 '도포'다.
도포는 가슴 부근에 술띠를 둘러 착용하는데, 움직일 때마다 띠가 아래로 흘러내리는 불편함이 있어 강씨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술띠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하는 위치를 찾아 특허까지 받았다.
강씨는 이외에도 세탁 후 솜 뭉침을 방지하는 누비 제작 기술과 착용자의 키에 맞춰 길이를 조절하는 한복 치마 등 총 3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에게 한복을 입지 않는 이유를 물으면 '불편함' 때문이래요. 전통은 지키면서도 입는 사람은 편해야 하잖아요. 그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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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의 도전은 옷감의 경계도 넘어섰다.
원주한지문화제와의 협업을 계기로 한지 직물에 관심을 둔 그는 2012년 '한지 프로젝트 뉴욕' 전시에서 한지로 만든 '원삼'(조선시대 여성들이 혼례나 큰 행사에서 입던 전통 예복)을 출품하면서 한지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처음에는 한지를 실처럼 가공한 직물이나 종이 자체로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옷감이 쉽게 찢어지거나 움직일 때마다 치수가 줄어드는 문제에 부딪혔지만, 여러 차례 옷을 만들고 폐기하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한지의 물성을 익히고 이를 제작 과정에 반영했다.
이 같은 노력 끝에 이듬해 한복의 날 기념 패션쇼에서 한지 직물로 제작한 신한복 8점을 선보이며 작품의 폭을 넓혔고, 이후 중국 상하이와 이탈리아 등 해외 무대에서도 한지의 특성을 살린 한복을 소개했다.
2022년에는 미국 워싱턴DC 스미소니언박물관 아시아관에서 한지로 고구려 고분벽화 속 복식을 재현하는 등 전통과 새로운 소재를 접목하며 우리 옷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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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며 명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강씨에게 '명장'이라는 이름은 영예보다는 무거운 책임으로 다가왔다.
"명장이라는 이름을 받고 기뻤던 건 명패를 받는 순간뿐이었던 것 같아요. 그 뒤로는 오히려 스스로 기준도 높아져서 바느질 한 땀 한 땀이 더 조심스러워졌어요."
그런데도 그가 바느질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한복이 가진 아름다움과 가치를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어서다.
올해 3월 원주에서 강릉으로 작업실을 옮긴 것도 그런 바람이 반영됐다. 한복 관련 행사 제안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강릉시의 지원도 이주를 결심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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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양지웅]
강씨는 이주 전부터 강릉을 무대로 한복의 매력을 알리는 활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실제 2016년부터 '강릉문화재야행 한복 패션쇼'를 기획·연출하며 지역 문화와 한복을 접목했다.
지난해에는 강릉 단오의 오방색과 동해의 푸른 물결을 담은 한복을 선보였고, 올해는 청소년 한복 패션쇼를 기획해 의상을 제작했다.
그는 강릉 고유의 문화유산을 한복에 녹여 강릉을 '한복 도시'로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
그는 앞으로 후배들이 안정적으로 기술을 배우고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공간과 판로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씨는 "한복을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창업과 자립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작업 공간과 장비를 공유하고, 만든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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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강씨가 생계를 위해 시작한 바느질은 이제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가 됐다.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하고 손가락에 힘이 떨어지는 것을 느낄 때면 언제까지 바느질을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도 앞서지만, 새로운 작품을 향한 열정만큼은 여전하다.
"한복은 제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준 친구예요. 제가 불안해할 때면 왜 그런지 돌아보게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줬죠. 마지막까지 이 친구와 함께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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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taeta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11월01일 06시45분 송고
Source: Yonhap Korean · 강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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