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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징어

[연합뉴스 자료사진]

10월 서해와 남해의 갯바위와 낚싯배에는 갑오징어를 노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갑오징어는 바닷물이 15~20℃로 데워지는 4~6월, 수심 2~10m 안팎의 연안으로 몰려와 해조류나 암초에 알을 붙여 낳는다.

알은 한 달 남짓 지나 깨어나고, 새끼는 여름 내내 새우와 작은 물고기를 쫓으며 몸을 불린다. 가을이면 살이 두툼하게 오른 개체를 만나는 이유다. 해역과 수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10월과 11월은 갑오징어 낚시꾼들이 한 해를 기다리는 철이다. 제철을 안다는 것은 달력의 날짜를 외우는 일과 다르다. 바다가 생명을 키워내는 시간표를 읽는 일이다.

그 바다가 예전 같지 않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국내 갑오징어 어획량은 1983년 5만9천487t에서 2017년 4천870t으로 10분의 1 아래로 줄었다. 연안 환경의 변화와 남획이 원인으로 꼽힌다.

전북 군산시는 2024년부터 2028년까지 40억원을 들여 갑오징어 산란장과 인공 해조장을 만들고 있고, 경남 남해 연안에도 갑오징어 종자가 방류됐다. 가을 낚시의 손맛은 봄 산란장이 지켜질 때 이어진다.

갑오징어는 몸속 등 쪽에 길쭉한 타원형의 단단한 뼈를 품고 있다. 이 뼈를 갑옷에 빗대 갑(甲)이라 부르고, 이름도 갑오징어가 됐다. 갑은 탄산칼슘이 주성분인 석회질 구조물이다. 안쪽은 얇은 칸막이가 촘촘히 겹친 다공질이어서 칸마다 기체와 액체가 함께 들어 있다.

갑오징어는 이 액체의 양을 늘리고 줄여 몸의 비중을 바꾸고, 그 힘으로 물속에서 떠오르거나 가라앉는다. 1950년대 영국 연구진은 갑오징어가 가벼워지고 무거워지는 차이가 거의 전부 갑의 밀도 변화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부드럽고 두툼한 살 안에 정교한 부력 장치를 품은 셈이다. 그 살은 씹을수록 은은한 단맛을 낸다.

◇ 문헌 속 갑오징어

옛사람들은 오징어를 '오적어'(烏賊魚), '오즉'(烏鰂), '묵어'(墨魚) 등으로 불렀다.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중 1814년 엮은 '자산어보'는 중국 문헌 '남월지'(南越志)를 인용해 이름의 유래를 전한다. 오징어가 물 위에 죽은 듯 떠 있다가 까마귀가 쪼러 내려오면 다리로 감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다.

까마귀(烏)를 해치는 도적(賊)이라는 뜻이다. 실제 생태와는 거리가 먼 전설이지만, 바다 생물의 습성을 이야기로 풀어낸 옛사람들의 관찰과 상상이 담겨 있다. '자산어보'가 오적어 항목에서 그린 생김새는 등에 넓적한 뼈를 지닌 지금의 갑오징어에 가깝다.

갑오징어의 먹물에도 옛사람들의 생각이 스며 있다. '자산어보'는 오징어 먹물로 쓴 글씨가 해가 지나면 벗겨져 사라지지만, 그 종이를 바닷물에 담그면 글자가 되살아난다고 적었다. 여기서 '오적어묵계'(烏賊魚墨契)라는 말이 생겼다. 오징어 먹물로 쓴 계약서처럼 세월이 흐르면 흔적 없이 지워지는 약속, 곧 믿지 못할 약속을 가리킨다. 바다 생물을 들여다본 관찰이 사람 사이의 신의를 돌아보게 한 것이다.

오징어는 조선의 밥상과 살림에도 깊이 들어와 있었다. 15~16세기 나라에서 펴낸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오적어가 여러 바닷가 고을의 토산물로 올라 있다. 다만 옛 기록 속 오적어가 언제나 오늘의 갑오징어와 같은 종을 가리킨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바다의 산물이 계절의 귀한 먹거리이자 중요한 생활 자원이었고, 사람들은 그때를 살펴 식재료를 썼다는 사실이다.

본초학에서는 갑오징어의 살과 갑을 나눠 썼다. 살은 혈(血)과 음(陰)을 기르는 식재료로 설명했고, 말린 갑은 해표초(海螵蛸) 또는 오적골(烏賊骨)이라는 약재로 썼다. 전통 의서는 해표초가 피를 멎게 하고(收斂止血) 위산을 누그러뜨려 통증을 가라앉히며(制酸止痛) 짓무른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쓰였다고 적고 있다.

해표초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오늘날 제산제 성분으로도 쓰인다는 점에서 옛 쓰임새와 겹치는 대목이 있다. 같은 생물이라도 부위에 따라 쓰임을 달리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통 의학의 기록이며, 현대 의학의 임상시험으로 효과가 입증된 치료와는 구분해야 한다.

현대 영양학의 눈으로 보면 갑오징어는 기름기 적은 단백질 식품이다. 미국 농무부(USDA) 식품성분 자료에 따르면 날것 100g에 단백질이 16.2g 들어 있는 반면 지방은 0.7g, 열량은 79㎉에 그친다. 오징어류에 많은 아미노산의 일종인 타우린도 들어 있다. 단백질은 근육과 신체 조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고, 나이가 들수록 근육량이 줄어드는 만큼 지방이 적은 단백질 공급원은 반갑다.

다만 같은 100g에 콜레스테롤이 112㎎ 들어 있고 퓨린도 적지 않다. 이상지질혈증이나 통풍, 고요산혈증이 있는 사람은 섭취량과 자신의 식이 지침을 살펴야 한다. 갑오징어 한 접시가 모든 질병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채소와 곡류를 곁들이고 자기 몸에 맞는 양을 지키는 것이 먼저다.

도교 양생의 지혜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자연의 때를 알고 자기 몸에 맞게 먹는 것이다. 몸에 좋다는 음식이라도 양이 지나치면 탈이 난다. 낚시꾼은 바다의 때를 기다리고, 요리하는 사람은 재료의 맛을 살리며, 먹는 사람은 알맞은 양을 헤아린다. 기다림과 절제가 모여 한 끼의 지혜를 완성한다.

◇ 손자병법으로 바라본 갑오징어 요리

손자병법 구변편(九變篇)의 '구변'은 아홉 가지 변화, 곧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용병의 변칙을 뜻한다. 여기에는 다음 구절이 있다.

"도유소불유, 군유소불격, 성유소불공, 지유소부쟁, 군명유소불수(塗有所不由, 軍有所不擊, 城有所不攻, 地有所不爭, 君命有所不受)."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고, 치지 말아야 할 군대가 있으며, 공격하지 말아야 할 성이 있고, 다투지 말아야 할 땅이 있으며, 받들지 않아야 할 임금의 명령도 있다는 뜻이다. 손자는 이어 "장수가 구변의 이로움에 통달하면 용병을 안다"고 했다. 앞으로 내달리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 형세를 살펴 멈출 때 멈추고, 방법을 바꿀 때 바꾸는 것이 장수의 지혜다.

갑오징어의 요리법도 이와 닮았다. 신선한 갑오징어는 회로 떠서 본래의 단맛과 쫀득한 식감을 즐긴다. 끓는 물에 살짝 데치면 숙회가 되고, 미나리와 쪽파에 돌돌 말아 강회로 내면 바다의 맛에 채소의 향이 더해진다.

불에 구우면 고소한 풍미가 살아나고, 무와 채소를 넣어 탕으로 끓이면 시원한 국물이 우러난다. 초고추장에 버무리면 새콤한 무침이 되고, 채소와 볶으면 양념이 속까지 밴다. 튀기면 바삭한 겉과 쫄깃한 속이 어우러지며, 잘 말리면 맛이 농축되고 오래 두고 먹기에도 좋다.

같은 갑오징어지만 조리법에 따라 맛과 쓰임이 달라진다. 재료는 그대로인데 재료를 대하는 방법이 달라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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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뚜기와 갑오징어

[연합뉴스 자료사진]

구변편의 가르침은 지킬 중심은 지키되 방법은 상황에 맞게 바꾸라는 데 있다. 신선함을 살릴 때는 회가 알맞고, 따뜻한 국물이 필요할 때는 탕이 어울리며, 오래 두고 먹어야 할 때는 말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모든 재료에 한 가지 조리법만 고집하지 않듯, 삶에서도 한 가지 방법만 늘 옳다고 여겨서는 곤란하다.

손자는 또 '시고지자지려, 필잡어리해'(是故智者之慮, 必雜於利害)라고 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반드시 이로움과 해로움을 함께 헤아린다는 뜻이다. 손자는 이어 이로운 처지에서 해로움을 함께 따지면 일을 믿고 이룰 수 있고, 해로운 처지에서 이로움을 함께 따지면 근심을 풀 수 있다고 했다. 눈앞의 이익에 들뜨지 말고, 그 선택이 가져올 결과까지 살피라는 가르침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갑오징어는 좋은 단백질을 주지만 조리법에 따라 영양과 몸의 부담이 달라진다. 미국 농무부 자료에서 오징어는 튀기면 100g당 열량이 92㎉에서 175㎉로, 지방이 1.4g에서 7.5g으로 늘어난다. 볶음과 무침은 양념에 따라 나트륨과 당류가 많아질 수 있고, 말린 것은 짠맛이 강해지기 쉬워 양을 살펴야 한다. 회는 신선도와 위생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몸에 좋다는 이유만으로 한 가지 음식이나 조리법을 고집하기보다 먹는 사람의 건강 상태와 식사 전체의 균형을 함께 따져야 한다.

노자의 '도덕경' 8장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가장 높은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노자는 물이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두가 꺼리는 낮은 곳에 머물기에 도(道)에 가깝다고 했다. 물은 한 모양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릇을 만나면 그릇을 따르고, 낮은 곳을 만나면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래도 물은 끝내 물이다.

이미지 확대 곰소포구의 갑오징어 건어장

곰소포구의 갑오징어 건어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갑오징어도 회가 되면 신선함을 드러내고, 숙회가 되면 부드러운 식감을 내며, 탕이 되면 국물에 맛을 보탠다. 채소와 만나면 조화를 이루고, 말리면 저장의 지혜가 된다. 모습은 달라져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제 가치를 드러낸다.

사람의 삶도 그렇다. 나이가 들면 몸에 맞는 음식이 달라지고, 계절이 바뀌면 식탁도 달라져야 한다. 오래 지켜온 경험은 소중하지만, 어제의 방법이 오늘도 꼭 맞으리란 법은 없다. 지금의 몸과 형편을 살펴 방법을 바꾸는 사람은 변화 속에서도 중심을 지킬 수 있다.

저속노화의 밥상도 특별한 음식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다양한 식재료를 골고루 먹고, 양념과 기름을 지나치게 쓰지 않으며, 자기 몸에 맞는 식사 습관을 꾸준히 이어가는 데서 시작한다. 무조건 바꾸는 것도, 무조건 지키는 것도 답이 될 수 없다.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바꿔야 할 것은 바꾸는 균형이 필요하다.

부드러운 살 속에 단단한 갑을 품은 갑오징어처럼, 우리도 마음의 중심은 지키되 살아가는 방법은 바꿀 줄 알아야 한다. 때를 읽고, 지나침을 피하고, 나와 다른 것을 조화롭게 받아들이는 것. 갑오징어 한 마리가 밥상 위에서 들려주는 삶의 지혜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11월02일 09시13분 송고

Source: Yonhap Korean · 이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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