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우

이미지 확대 데이나 화이트 UFC 회장과 트럼프 대통령

데이나 화이트 UFC 회장과 트럼프 대통령

[UPI=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마초(남성성 과시) 기질을 줄곧 드러내 왔다. 그는 2007년 미국 최대 프로레슬링 단체 WWE '레슬매니아23:억만장자들의 대결'에서 빈스 맥마흔 WWE 회장을 링 바닥에 쓰러뜨리고 그의 머리를 삭발했다. 물론 각본에 따른 쇼였다. 그는 1988·1989년 레슬매니아를 자신의 사업 근거지였던 애틀랜틱시티에 유치했다. 2001년에는 폭력성 논란으로 곤란을 겪던 종합격투기 UFC를 위해 자신의 카지노를 경기장으로 내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3년 WWE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격투기 사랑'은 유별나다. 당선인 신분이던 2024년 11월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의 UFC 대회에 등장해 관중의 환호를 받았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여러 차례 UFC 경기장을 찾았다. 지난 6월14일에는 아예 백악관 남쪽 잔디광장에 UFC 상징인 팔각형 철망 경기장 '옥타곤'을 설치해 대회를 개최했다. 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행사이자 자신의 80번째 생일을 맞아 열린 대회였다.

미국 프로레슬링 업계엔 '케이페이브(kayfabe)'라는 현장 용어가 있다. 각본에 따른 연출된 상황을 실제처럼 보이게 하고, 그 설정을 유지하는 관행을 뜻한다. 선수는 부여받은 캐릭터에 맞춰 연기하면서 관객과 소통한다. 미국 언론에선 트럼프 정치 행태를 케이페이브에 빗대 분석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1987년 출간한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대중의 환상을 자극하는 '진실한 과장(truthful hyperbole)'을 효과적인 홍보 수단으로 제시했다. 2017년 7월에는 과거 레슬매니아에서 자신이 쓰러뜨린 맥마흔 얼굴에 CNN 로고를 합성한 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프로레슬링의 연출방식을 활용해 자신에게 비판적인 방송사를 공격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자신이 설립한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데이나 화이트 UFC 회장에게 백악관 대변인직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를 '파이터이자 전사'로 치켜세우며 UFC 스타들을 보좌진으로 데려오라고도 했다. 백악관 대변인 자리는 현재 공석이다. 화이트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25년 지기이자 열렬한 정치적 지지자로, 세 차례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지지 연설을 했다. 그는 SNS에 백악관 브리핑룸 연단에 선 자신의 사진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겠다고 밝혔지만, 대변인직 제안을 거절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진담인지 농담인지조차 불분명한 인사 해프닝이다.

미국의 미디어비평가 닐 포스트먼은 저서 <죽도록 즐기기>에서 정치와 사회문제가 공적 담론의 대상이 아니라 대중의 관심을 끄는 오락거리로 전락할 위험을 경고했다. 스포츠계나 연예계 인사라고 공직을 맡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공직 인사에는 그에 걸맞은 자격과 책임에 대한 진지한 고려가 따라야 한다. 백악관 대변인은 세계가 지켜보는 중책이다. 설령 농담이라고 해도 그런 자리를 격투기 흥행사에게 제안하면서 UFC 선수들을 보좌진으로 데려오라 했다니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정 운영은 쇼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를 또 하나의 흥행 무대로 여기는 듯하다.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11월09일 06시00분 송고

Source: Yonhap Korean · 김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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