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공급자에서 글로벌 사우스의 전략적 주체로

서상현 고려대 아프리카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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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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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 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아프리카가 세계 경제와 국제질서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전략적 선택지를 모색하고 있다. 과거 서구 국가들의 원조와 교역에 크게 의존했던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제 중국ㆍ인도ㆍ브라질 등 신흥국과 협력을 확대하며 금융ㆍ기술ㆍ산업ㆍ기후변화ㆍ국제기구 개혁 등으로 협력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그 중심에 브릭스(BRICS)가 있다. 브라질ㆍ러시아ㆍ인도ㆍ중국ㆍ남아공으로 출발한 브릭스는 2024년 이집트ㆍ에티오피아ㆍ이란ㆍUAE가 합류하면서 외연을 크게 확장했다. 아프리카에 브릭스는 단순한 교역 상대를 넘어 개발금융과 기술협력, 산업화 경험 공유, 국제기구 개혁 등 기존 서방 중심 협력을 보완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한다. 에티오피아는 대표적인 사례다. 2024년 브릭스에 가입한 에티오피아는 인프라 확충과 기술ㆍ투자 유치, 경제 다변화를 위해 브릭스 국가들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미지 확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BRICS 회의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BRICS 회의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브릭스가 열어주는 새로운 금융 선택지

아프리카 산업화의 가장 큰 제약 가운데 하나는 자본 부족이다. 도로ㆍ철도ㆍ항만ㆍ전력망ㆍ디지털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지만, 높은 국가 신용위험과 차입비용 때문에 필요한 투자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브릭스 신개발은행(NDB)은 새로운 개발금융 채널로 주목받고 있다. NDB는 인프라와 청정에너지, 교통, 수자원, 디지털 연결성 등 생산성을 높이는 분야에 자금을 공급하며 개발도상국의 장기적인 산업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어디에서 돈을 빌릴 것인가'가 아니다. 개발금융을 산업정책과 연결해 현지 생산과 일자리, 기술 역량을 얼마나 키울 것인가가 핵심이다. 원조와 차관을 산업화의 마중물로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 단순 자원 공급지에서 가치사슬의 중심지로…기술 이전이 관건

브릭스 협력의 또 다른 가능성은 아프리카의 원자재 수출 구조를 산업 가치사슬로 전환하는 것이다. 아프리카는 코발트ㆍ구리ㆍ리튬ㆍ망간ㆍ니켈ㆍ백금 등 핵심 광물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지만, 원광이나 1차 산품을 수출하고 정제ㆍ가공품을 수입하는 구조가 여전히 일반적이다. 광산 개발에서 선광ㆍ제련ㆍ정제, 소재ㆍ부품 생산까지 가치사슬을 현지에 구축해 부가가치와 일자리가 아프리카에 남도록 해야 한다.

브릭스는 이를 지원할 수 있는 기술과 산업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제조업ㆍ디지털 산업, 브라질은 농업ㆍ식품 가공, 남아공은 광업ㆍ에너지 분야에서 축적된 역량이 있다. NDB 등 개발금융과 회원국 기업의 투자를 결합해 광산 개발→정제ㆍ가공→소재 생산→수출로 이어지는 산업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기술 이전과 인력 양성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농업도 생산성 향상에 그치지 않고 저장ㆍ냉장ㆍ가공ㆍ물류를 연계해 식품 제조ㆍ수출산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AI를 활용한 작황 예측ㆍ정밀농업, 제조업 품질관리ㆍ예지보전, 항만ㆍ물류 최적화 등 'AI+산업' 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결국 브릭스-아프리카 협력은 '자원 확보'에서 '가치사슬 구축'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자원ㆍ농업ㆍ에너지를 브릭스의 기술ㆍ자본ㆍ시장과 결합하되 현지 가공과 기술 이전을 확대해 아프리카를 단순한 원자재 공급기지가 아닌 새로운 산업기지로 발전시키는 협력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 브릭스 넘어 유엔과 기후무대로…커지는 아프리카의 목소리

브릭스의 확대는 경제협력뿐 아니라 국제질서에서 아프리카의 목소리를 키우는 외교적 공간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연합(AU)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개혁을 지속해 요구하고 있다. 2005년 채택된 '에줄위니 합의'(Ezulwini Consensus)는 아프리카에 상임이사국 2석 이상과 비상임이사국 5석을 배정하고 상임이사국의 특권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브릭스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국제무대에서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공간이 될 수 있다. 모든 현안에서 동일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 국제기구의 대표성과 의사결정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존재한다.

기후변화 대응에서도 아프리카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2027년 제32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nference of the Parties·COP32)를 아디스아바바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이를 계기로 아프리카를 기후변화의 피해자가 아니라 재생에너지ㆍ산림복원ㆍ기후적응ㆍ기후금융 등 해법을 제시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아프리카가 원하는 협력 방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기후변화 피해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녹색산업과 기후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성장모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미지 확대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한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남아공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한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남아공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인도와 협력도 산업ㆍ안보 파트너십으로

브릭스는 다자협력을 양자 협력으로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도 한다. 에티오피아와 인도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양국은 농업ㆍ교육ㆍ보건ㆍICT에서 시작한 협력을 투자와 방위ㆍ안보, 핵심 광물, 청정에너지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2026년 9월 뉴델리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국 정상도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를 논의했다. 이는 브릭스 협력이 정상회의 공동선언에 머물지 않고 실제 투자ㆍ기술협력ㆍ인프라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아프리카가 중국과 미국, EU, 인도, 걸프 국가 등 다양한 파트너와 경쟁과 협력을 병행하며 협상력을 높이는 '전략적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 브릭스 시대, 한국도 '원조'에서 '산업전환 파트너'로

브릭스 확대와 아프리카의 전략적 자율성 강화는 한국의 대(對)아프리카 진출 방식에도 새로운 접근을 요구한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브릭스를 활용해 중국ㆍ인도ㆍ중동 등과 무역ㆍ투자ㆍ금융ㆍ기술 협력을 다변화하며 산업화에 필요한 선택지를 확대하고 있다. 한국도 브릭스와 경쟁하기보다 브릭스와 함께 아프리카 산업화에 참여하는 '한ㆍ브릭스ㆍ아프리카 삼각 협력'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협력의 초점은 개별 인프라나 ICT 사업에서 벗어나 산업 가치사슬 전체를 구축하는 것이어야 한다. 디지털 농업의 경우 AI 플랫폼뿐 아니라 농업금융ㆍ생산ㆍ저장ㆍ콜드체인ㆍ식품가공ㆍ물류ㆍ수출을 연계하고, 핵심 광물 역시 광산 개발에서 제련ㆍ정제, 소재ㆍ배터리ㆍ이모빌리티 산업으로 확대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브릭스의 시장ㆍ자원ㆍ금융 네트워크와 한국의 제조ㆍICTㆍ인프라ㆍ기술 역량을 결합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한국의 지식공유사업(KSP)을 산업 프로젝트 발굴의 출발점으로 활용하고, 대외협력기금(EDCF)이나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브릭스의 NDB 등 다양한 개발금융을 연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기업 간 합작투자(JV)와 민관협력(PPP)으로 사업을 확대해 한국 기업의 현지 진출 위험을 낮추는 전략이 필요하다.

즉 한국의 기술ㆍ산업화 역량, 브릭스의 시장ㆍ금융ㆍ자원 네트워크, 아프리카의 성장시장을 결합하는 삼각 협력을 통해 한국 기업의 아프리카 진출을 산업 가치사슬 구축과 투자 확대의 기회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서상현 박사

현 고려대학교 아프리카센터 연구위원,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 현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역임,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아공대학(UNISA) 정치학 박사, '아프리카 이해', '아프리카 경제'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 집필.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10월27일 07시00분 송고

Source: Yonhap Korean · 고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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