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

[극단 오징어 제공]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연극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뮤지컬이었다. 배우의 몸과 움직임이 무대 공간을 만들어가는 방식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물고기의 코딱지와 파리똥, 시곗바늘과 자동차 와이퍼를 연결하는 기발한 발상이 눈길을 끌었다. 공연을 보고 나서도 무엇보다 궁금했던 것은 이처럼 엉뚱하고 유쾌한 상상력이 어떻게 한 노인의 상실과 고독을 절실하게 전달할 수 있었겠느냐는 점이다.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극단 오징어가 제작한 창작 뮤지컬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4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돼 2025년 2월 6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남동 더줌아트센터에서 초연했다. 일흔 살 생일을 맞은 고춘자는 생일 소원을 떠올리지 못하다가, 느슨해진 정신줄에서 빠져나온 '영혼의 물고기'를 따라 기상천외한 여정에 나선다. 현실에서는 갑자기 사라진 어머니를 찾아 가족들이 동네 곳곳을 헤맨다. 록과 트로트, 보사노바를 오가는 음악이 두 세계를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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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오미영

[극단 오징어 제공]

작가 오미영은 노년과 치매라는 무거운 소재를 익숙한 비극이나 돌봄의 서사에 가두지 않는다. 치매 환자가 무엇을 보고 있을지 묻고, 누구도 알 수 없는 그 내면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노년의 신체적 변화를 익살스러운 이야기로 바꾸고, 어머니의 일상적인 말을 노랫말로 옮기며, 사라져가는 기억 속에서도 끝내 남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했다. 그렇게 유머와 비애, 환상과 현실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은 채 한 인물의 삶 안에 공존한다.

한국은 2024년 말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통계로는 2025년 말 65세 이상 인구가 1천84만명으로 전체의 21.21%를 차지했다. 중앙치매센터는 2025년 국내 치매 환자를 97만명으로 추정하고, 그 수가 2026년에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무대도 이 변화에 응답했다.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는 2025년 한국 뮤지컬 결산에서 그해 소재가 넓어진 흐름의 출발점으로 연초에 오른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와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의 '여성 노인'들을 꼽았다.

오미영은 뮤지컬 '빨래' 초연에서 희정엄마 역으로 무대에 섰던 배우 출신 작가 겸 연출가다. 순댓국집을 하는 엄마와 서른세 살 딸의 이야기 '한밤의 세레나데'를 쓰고 연출했다. 산골 할머니 두 사람과 개·고양이·닭이 한솥밥 먹는 '식구'가 되는 '식구를 찾아서'로 2011년 딤프(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어워즈 창작뮤지컬상과 제18회 한국뮤지컬대상 극본상을 받았다. 엄마와 노년, 가족은 그가 꾸준히 다뤄온 소재다.

2025년 초연을 앞둔 간담회에서 그는 늘 어른 같던 부모가 어느새 "고등어자반 뒤집어지듯 아이처럼 됐다"고 말했다. 보호받던 자식이 보호자가 되면서 느낀 당혹감을 같은 처지의 40~50대와 나누며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는 것이 그가 밝힌 창작 배경이다.

재연은 지난달 16일 같은 극장에서 개막해 이달 15일까지 이어진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6 창작산실 2차 제작지원' 작품으로도 선정됐다. 초연을 이끈 오미영 작·연출과 노선락 작곡가에 이소영 연출이 공동연출로 합류했고, 춘자 역은 전국향·백현주가 번갈아 맡는다.

앞선 공연평에서는 이번 재연이 춘자의 환상세계를 무대 위에 어떻게 구현했는지 살펴봤다. 그러나 무대에 구현된 결과만으로는 그 기발한 상상력이 어디에서 출발했고, 어떤 창작적 선택을 거쳐 지금의 작품이 되었는지까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작품의 상징들은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었을까. 춘자의 소원이 다시 자식들을 향하는 결말에는 어떤 생각이 담겨 있을까. 초연과 재연의 차이를 작가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무대에서 출발한 이 질문들을 오미영 작가에게 직접 물었다.

◇ 길 잃은 노인의 눈에 비친 세계

이 작품은 치매를 기억의 상실이나 인지 능력의 쇠퇴로만 그리지 않는다. 춘자의 내면에서 펼쳐지는 환상은 풍성하고 자유롭지만, 그 안에는 과거의 상처와 기억이 뒤엉켜 있다. 현실에서 끝내 꺼내지 못한 춘자의 속내가 환상의 모습으로 새어 나오는 셈이다.

오미영은 "'치매 환자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이 작품은 이 질문 하나로 시작됐다"며 "누구하고도 소통하지 못한,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그 세계를 무대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치매로 인한 환각이 누구에게나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고, 개인의 경험과 기억에 따라 모두 다를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고춘자라는 인물의 기억과, 지금 길을 잃고 헤매면서 경험하는 것들이 교묘하게 섞여 있는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보려고 했죠."

다만 초반 전개는 아쉽다. 고깃집 로고송에서 시작해 영혼의 물고기, 코딱지 같은 환상적 이미지가 노래와 함께 숨 가쁘게 이어진다. 각각의 이미지가 춘자의 기억과 연결된다는 사실은 극이 한참 진행된 뒤에야 드러난다. 초반에는 이미지들이 서둘러 제시되는 탓에 그 의미를 받아들이기도, 극의 리듬과 호흡을 따라가기도 버거웠다.

작가는 이 대목이 재연에서 이소영 연출의 아이디어로 새로 고친 구성이라고 했다. "낯선 방식의 표현들로 앞으로 펼쳐질 세계가 춘자씨의 환상 속 세계임을 관객들에게 알리고, 춘자씨를 제외한 다른 배우들은 모두 일인다역을 하는 인물들이라는 콘셉트를 보여주기 위한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 물고기가 빠져나가는 몸

영혼의 물고기가 사람 몸속에 살다가 나이가 들면서 하나씩 빠져나간다는 설정은 독특하다. 아이와 노인의 물고기 숫자가 같다는 대목은 두 존재의 신체적 닮음과,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서로 다른 시선을 함께 드러낸다. 물고기는 기억과 함께 배설과 눈물 같은 몸의 현상에도 닿아 있다. 작품은 노화를 정신이나 기억의 문제보다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과정으로 형상화한다.

그런데 작가의 답은 뜻밖에 담백했다.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실은 그냥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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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

[극단 오징어 제공]

써놓고 나서 해석해보니 물고기는 몸속의 생명력 같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춘자씨가 생일 케이크의 불을 끄려다가 오줌을 쌌고, 그 오줌 속에서 물고기가 나왔어요. 노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젊었을 땐 하지 않았던 실수들을 하게 되잖아요. 그럴 때마다 몸속에서 물고기들이 빠져나오는 거죠."

그는 그 실수들이 아이들의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봤다. "자신도 모르게 오줌을 싸고, 똥도 싸고, 눈물이 제어가 안 되고…. 아이들은 아직 물고기가 덜 생겨서, 노인은 물고기가 많이 빠져나가서 그래요. 아이와 노인은 그래서 비슷한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물고기가 다 빠져나가고 나면, 우리의 몸에서 생명이 다 빠져나가고 나면, 태어나지 않았던 때로 돌아가게 되는 거죠.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겠죠."

춘자는 물고기의 코딱지를 먹고 일흔 살에서 일곱 살로 돌아가지만, 왕똥파리의 똥을 먹고는 단숨에 백 살이 된다. 두 장면은 짝을 이루듯 맞물린다. 특히 어른이 되려면 더 쓰고 더럽고 치사한 일을 참아야 한다는 파리의 말에는 삶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이 배어 있다.

출발점은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였다. 동화 속 앨리스는 '나를 마셔요'(DRINK ME)라고 적힌 병을 마시고 몸이 작아지고, '나를 먹어요'(EAT ME)라고 적힌 케이크를 먹고 커진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무언가를 먹고 키가 커지고 무언가를 먹고 작아지는 것처럼,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에서도 무언가를 먹고 나이가 어려지고 무언가를 먹고 나이가 많아지길 바랐어요. 춘자씨의 이상한 나라에서는 그게 엉뚱하고 유쾌하고 재미난 것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안티에이징계의 에르메스'인 물고기 코딱지를 먹으면 나이에서 0이 빠져 일곱 살이 되고, 파리똥을 먹으면 100살이 된다. 파리똥에는 한 세대의 추억도 묻어 있다. 1981년 발표돼 미국 빌보드 핫100 정상을 10주 연속 지킨 올리비아 뉴턴존의 'Physical'이다. 그는 자신이 이 노래를 "웬일이니 파리똥"으로 바꿔 부르던 세대라고 했다.

"처음에는 'Physical'을 모티브로 작곡했는데, 표절 시비에 걸릴 것 같아서 노래를 다시 만들었어요. 심오한 뜻은 별로 없어요. 사실은 좀 웃자고 써넣은 겁니다."

웃으며 꺼낸 이야기였지만, 어른에 대한 생각은 진지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쓰고 더럽고 치사한 것들을 참아야 하는 거잖아요.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 어른이 되는 건 좀 다른 것 같아요. 나이를 먹는다고 누구나 지혜로운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쓰고 더럽고 치사하고 괴로운 시간들을 견뎌낸 인생의 내공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어른인 것 같아요."

◇ 시곗바늘이 와이퍼가 되기까지

한때 청량리역 시계탑에서 정확하게 시간을 가리키던 시곗바늘이 낡고 느려져 결국 자동차 와이퍼가 됐다는 설정도 인상적이다. 청량리역은 1911년 문을 연 서울 동북부의 관문 역이고, 역 앞 광장의 시계탑은 오랫동안 이 일대에서 약속 장소의 대명사로 통했다. 시곗바늘이었던 과거를 잊지 않으려는 와이퍼의 바람은 기억을 잃어가는 춘자의 처지와 겹친다. 눈앞의 흔적을 지우며 사는 존재가 정작 자신의 과거만은 지워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역설적이기도 하다.

와이퍼를 고른 데에는 생김새도 한몫했다. "시곗바늘과 와이퍼는 둘 다 철로 만들어졌고, 분침과 시침의 길이가 다르듯 운전석이랑 조수석 와이퍼의 길이가 다르잖아요. 슬쩍 모양도 비슷하답니다."

그는 "와이퍼는 이제 눈도 비도 먼지도 지우며 살고 있지만, 예전에 청량리역 광장 높은 시계탑의 시곗바늘이었던 영광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쩌면 춘자씨의 현재 상황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학교 앞에서 떡볶이집을 할 때 계산도 척척, 일도 척척 해내던 엄마가 늙어가고 있고, 그래서 자식들은 엄마가 자식들 이름마저 잊어버리면 어쩌나 하잖아요. 그 안타까운 마음들을 함께 담아내고 싶었어요."

선연(禪蓮) 김수미. 연극 평론가

▲ 전 월간 '한국연극'·'객석' 연극전문 기자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11월05일 17시20분 송고

Source: Yonhap Korean · 이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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