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기

흑자·적자 이분법 넘어 살펴야 할 인구구조와 제도의 허점

혐오와 선동 대신 냉정한 재정 보완과 원칙 확립 필요

이미지 확대 서울 시내의 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 모습

서울 시내의 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매달 월급명세서에서 빠져나가는 건강보험료를 보며 한숨을 내쉬는 국민들에게 외국인 건강보험 소식은 유독 민감한 뇌관이다. 지난해 외국인 건강보험 재정수지가 1조원 넘는 흑자를 냈다는 소식에도, 시선은 함께 공개된 중국인 가입자 재정 적자 전환에 쏠렸다.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는 서민들 사이에서 허탈감과 상대적 박탈감이 번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여기에 편승해 상호주의 원칙을 내세워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정치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반면 시민사회와 보건의료단체는 국적별 흑자·적자 셈법이 사회보험의 기본 원리를 부정하고 왜곡된 혐오를 부추긴다며 날을 세운다.

감정의 골이 깊어질수록 필요한 것은 냉정한 데이터 확인이다.

중국인 가입자의 의료비 지출 증가는 도덕적 해이 이전에 인구구조에서 출발한다. 2024년 통계에 따르면 국내 체류 중국인의 60세 이상 비율은 25.3%로, 전체 외국인 평균인 12.9%의 두 배에 달한다. 수십 년간 건설 현장과 식당 등에서 땀 흘려 일하며 지역사회를 지탱해 온 동포들이 나이가 들어 병원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이가 들고 아픈 사람이 병원을 더 찾는 것은 인간 생애주기상 자연스러운 이치이지, 특정 국적의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물론 국민들이 느끼는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가볍게 치부해서도 안 된다. 그동안 건강보험의 빈틈을 이용해 친인척을 피부양자로 등록하고 고액 치료만 받은 뒤 떠나는 이른바 '먹튀' 치료 쇼핑 사례는 국민에게 적지 않은 박탈감을 안겼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2024년 4월부터 외국인 피부양자의 국내 거주 요건을 6개월 이상으로 강화한 것은 늦었지만 꼭 필요한 조치였다.

동시에 외국인 건강보험 재정 전체가 1조원 이상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통계도 직시해야 한다. 비전문 취업 비자로 들어와 묵묵히 일하며 보험료를 내면서도, 언어 장벽이나 열악한 노동 환경 탓에 병원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젊은 이주노동자들이 이 흑자를 떠받치고 있다.

만약 국적별 수지를 따져 혜택을 제한하기 시작한다면, 병을 앓는 노인과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배제하는 민간 보험의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전 국민 공적 건강보험이 없는 미국 국적자에게는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실무적 모순도 피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한 불안의 본질은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위기감이다. 정부는 법으로 규정된 20%의 국고지원 의무를 온전히 채우지 못하고 있고, 급격한 고령화로 의료비는 치솟고 있다.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질수록 타인을 향한 잣대는 날카로워지기 마련이다.

악의적인 무임승차와 부정 수급은 철저한 검증으로 틀어막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정당하게 세금과 보험료를 내며 사회의 빈 곳을 채우는 이들의 정당한 건강권까지 흔들 수는 없다.

특정 집단을 향한 손가락질로는 건보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지켜낼 수 없다. 필요한 것은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가 아니라, 정부의 책임 있는 재정 지원과 제도의 정교한 보완이다.

shg@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10월27일 15시42분 송고

Source: Yonhap Korean · 서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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